사로국 건국
○ 기원전 57년 사로국을 건국
○ 경주 지역의 사로 6촌 세력을 통합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
○ 신라 역사의 시작이 되는 국가를 세우며 거서간으로 즉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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○ 기원전 57년 사로국을 건국
○ 경주 지역의 사로 6촌 세력을 통합하여 국가의 기틀을 마련
○ 신라 역사의 시작이 되는 국가를 세우며 거서간으로 즉위
○ 금성에 도성을 쌓고 궁궐을 건설
○ 국가 운영을 위한 수도 체계를 정비
○ 왕권과 국력의 기반을 마련
○ 졸본 지역의 여러 부족 세력을 통합
○ 부여계와 토착 세력을 통합
○ 기원전 37년 졸본에서 고구려 건국
○ 알영왕후와 혼인하여 왕실의 기반을 다짐
○ 6촌 세력을 통합하며 왕권을 강화
○ 국가의 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기반을 마련
○ 행인국을 복속, 영토를 확장
○ 주변 소국을 편입 후 세력 강화
○ 국가의 영향력 점차 확대
○ 북옥저를 정벌, 북동 지역의 지배력 강화
○ 주변 부족에 대한 통제력 확보
○ 고구려의 영토 확장 기반 마련
○ 마한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 관계를 맺음
○ 주변 국가와의 외교를 통해 국가를 안정
○ 대외 교류의 기반을 마련
○ 기원전 18년 온조가 위례성을 중심으로 백제를 건국
○ 초기 국호인 십제를 백제로 변경, 국가 정체성을 확립
○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성장
○ 동옥저와 사신을 교환하며 우호 관계를 유지
○ 동옥저에서 특산물을 예물로 바침
○ 주변 세력과의 교류를 확대
○ 신라의 제사와 정치를 함께 담당하는 왕권을 확립
○ 신라 왕 중 유일하게 '차차웅'이라는 왕호를 사용
○ 종교적 권위를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
○ 혁거세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.
○ 박씨 왕실의 통치 기반을 안정적으로 이어감.
○ 초기 신라 왕권의 연속성을 유지
○ 왜와 사신을 교환하며 외교 관계를 유지
○ 우호적인 대외 관계를 통해 국가 안정을 도모
○ 초기 신라의 대외 교류 기반을 마련
○ 낙랑군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충돌을 최소화
○ 주변 세력과의 교류를 통해 국가의 안정을 추구
○ 신라의 대외 외교 기반을 다짐
○ 왜의 침입에 맞서 군사를 이끌고 방어
○ 국경 방어를 강화하여 백성을 보호
○ 초기 신라의 국방력을 높이는 계기가 됨
○ 22년 부여 공격, 대소왕을 전사
○ 부여의 세력 약화
○ 고구려의 북방 지배력을 강화
○ 32년 낙랑을 공격하여 낙랑군을 압박
○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설화의 배경이 된 사건
○ 한사군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을 확대
○ 정복 활동을 통해 왕권을 강화
○ 중앙의 통치력을 높여 국가 체제를 안정
○ 고구려의 국가 기반 다짐
○ 신라의 6부 체제를 정비하여 통치 기반을 강화
○ 각 부족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리
○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
○ 금성을 중심으로 도성과 방어 시설을 정비
○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운영의 기반을 마련
○ 수도의 기능을 더욱 안정
○ 계루부 중심의 왕위 세습 체제 확립
○ 부족 세력 통합, 지방 지배 확대, 중앙 집권화 기틀 마련
○ 고구려 안정적 성장 기반 다짐
○ 옥저를 정복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
○ 동해안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
○ 국가의 경제적 기반 강화
○ 신라 최초의 석씨 왕으로 즉위
○ 박씨 왕실에서 석씨 왕실로 왕위가 이어짐
○ 왕위 계승 체계의 변화를 가져옴
○ 호공의 집을 차지하며 왕위에 오를 기반을 마련
○ 뛰어난 지략으로 민심을 얻었다고 전해짐
○ 왕권 확립의 계기가 됨
○ 농업을 장려하고 민생 안정을 위해 노력
○ 국가 운영 체계를 정비하여 통치 기반을 강화
○ 신라의 성장 기반을 마련
○ 왜의 침입에 맞서 군사를 이끌고 방어
○ 국경 방어를 강화하여 국가의 안정을 유지
○ 초기 신라의 군사력을 높이는 데 기여
○ 월성을 비롯한 성곽과 방어 시설을 정비
○ 수도 방어 체계를 강화하여 왕권을 안정
○ 국가 운영의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함
○ 왜의 침입에 맞서 군사를 이끌고 방어
○ 국경 방어를 강화하여 국가의 안정을 유지
○ 초기 신라의 국방력을 높이는 계기가 됨
○ 주변 소국을 복속하며 세력을 확대
○ 지방 통치 기반을 정비하여 국가를 발전
○ 신라의 성장 기반을 강화
○ 가야 지역을 공격하여 세력을 확장
○ 낙동강 유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
○ 신라의 영토 확장 기반을 마련
○ 갈문왕 제도를 정비하여 왕실의 권위를 강화
○ 왕족의 지위와 역할을 체계적으로 마련
○ 왕권 안정에 기여
○ 지방 행정 체계를 정비하여 통치력을 높임.
○ 중앙의 명령이 지방에 원활히 전달되도록 함
○ 국가 운영의 기반을 더욱 안정
○ 요동 지역으로 진출, 세력 확대
○ 중국 세력과의 경쟁 기반 마련
○ 북방 진출의 발판 구축
○ 왜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동원
○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침입을 격퇴
○ 국가의 안전과 영토를 지켜냄.
○ 백제와 국경 지역에서 여러 차례 충돌
○ 군사를 파견하여 국경 방어를 강화
○ 영토를 유지하며 국가의 세력을 지켜냄
○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출동
○ 국경 방어를 강화하고 침입을 격퇴
○ 북방 지역의 안정을 유지
○ 왜의 침입에 맞서 군사를 파견
○ 해안과 국경 지역의 방어를 강화
○ 신라의 영토와 백성을 보호
○ 지방 통치 체계를 정비하여 행정력을 강화
○ 중앙의 통치가 지방까지 미치도록 기반을 마련
○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임
○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여 국경 방어를 강화.
○ 군사를 파견하여 북방 지역의 안정을 유지.
○ 외적의 침입을 막아 국가를 수호
○ 지방 행정 체계를 정비하여 통치력을 높임.
○ 중앙의 명령이 지방까지 원활하게 전달되도록 함
○ 국가 운영의 기반을 더욱 안정시킴.
○ 왜의 침입에 맞서 군사를 동원하여 방어
○ 국경과 해안 지역의 경계를 강화
○ 신라의 영토와 백성을 보호
○ 백제와 국경 지역에서 여러 차례 충돌
○ 군사를 동원하여 국경 지역의 방어를 강화
○ 신라의 영토를 안정적으로 유지
○ 부족 중심 체제를 행정 중심 체제로 개편
○ 기존 5부를 행정구역으로 정비하여 지방 통치 강화
○ 국가 운영 체계를 더욱 체계적으로 정비
○ 지방 행정 체계를 정비하여 통치력을 강화
○ 중앙과 지방의 행정 운영을 안정
○ 국가 운영의 기반을 더욱 확립
○ 국방 체계를 정비하여 군사력을 강화
○ 성곽과 방어 시설을 보수하여 대비
○ 국가 방위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함
○ 백제의 침입에 대비하여 국경 방어를 강화
○ 군사를 동원하여 국경 지역의 안정을 유지
○ 신라의 영토를 수호하는 데 힘씀
○ 말갈의 침입에 대비하여 북방 방어를 강화
○ 군사를 파견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음
○ 국경 지역의 안전을 유지
○ 왕위 부자상속제를 확립
○ 왕위 계승의 안정성을 높여 왕권을 강화
○ 중앙집권 체제의 기반을 마련
○ 을파소 국상으로 임명, 정치 개혁 주도
○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도록 하는 진대법 시행, 농민 생산력 강화 및 생활 안정
○ 행정 능력 강화, 왕권 강화
○ 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오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.
○ 중국 삼국 간 대립을 외교적으로 활용하였다.
○ 대외 관계를 통해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였다
○ 위나라 관구검의 침공, 비류수 전투 발발
○ 고구려군의 대패, 수도 환도성이 함락
○ 동천왕은 남옥저로 피신한 뒤 국력을 회복
○ 위나라의 재침에 대비하여 국경 방어를 강화하였다.
○ 군사 조직과 방어 체계를 정비하였다.
○ 고구려의 재건과 국방력 회복에 힘썼다
○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백제의 세력을 확대
○ 낙랑군·대방군 등 한군현 세력과 대립
○ 백제가 주변 세력과 경쟁할 수 있는 국력을 키움
○ 위나라의 침입 이후 수도와 성곽을 복구하였다.
○ 전쟁으로 약화된 국가 체제를 재정비하였다.
○ 국력을 회복하여 왕권을 안정시켰다.
○ 좌평제-관등제 정비, 6좌평과 16관등제를 정비하여 관리 체계를 마련
○ 율령 반포, 필요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관리의 복색과 위계질서를 확립
○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와 백제 중앙 정치 조직의 기반을 확립
○ 서안평을 공격하여 요동 지역의 거점을 확보하였다.
○ 중국 세력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였다.
○ 대외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였다.
○ 낙랑군, 대방군 정벌, 한사군 세력 축출
○ 서안평 점령, 요동 방면 세력 확대
○ 대동강 유역 확보
○ 313년 낙랑군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.
○ 한반도 북부의 중국 군현 세력을 제거하였다.
○ 고구려의 남진 기반을 마련하였다.
○ 314년 대방군을 정벌하여 지배권을 확보하였다.
○ 한사군의 마지막 세력을 축출하였다.
○ 한반도 북부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였다.
○ 342년 전연(선비족)의 침입으로 환도성 함락
○ 왕릉 도굴, 왕의 어머니와 왕비가 포로로 잡힘
○ 고구려는 큰 피해를 입고 국력이 크게 약화
○ 군사체제 재정비, 국경 지역 방어 강화
○ 수도 복구
○ 왕권과 국가 체제 안정 추구
○ 김씨 왕위 세습 체제를 확립
○ 왕권을 강화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룸
○ 신라 왕실의 기반을 공고히 함
○ 신라 왕으로 처음 '마립간' 칭호를 사용
○ 왕권의 권위를 높이고 지배 체제를 강화
○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
○ 왜와 외교 관계를 맺고 활발하게 교류
○ 칠지도를 비롯한 문물을 통해 양국의 관계를 강화
○ 백제의 대외 교류망을 일본 열도까지 확대
○ 371년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
○ 전투 중 고국원왕 전사
○ 백제의 전성기를 가져온 대표적인 승리로 기록
○ 마한의 여러 세력을 통합하여 남쪽으로 영향력을 확대
○ 가야 지역 진출, 대방군의 옛 지역까지 세력 확장
○ 371년 평양성 공격, 고구려 고국원왕 전사
○ 천지에 제사를 지내며 왕실의 권위를 높임
○ 왕의 통치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
○ 강력해진 왕권과 국가의 위상을 드러냄
○ 불교 수용, 태학 설립, 율령 반포 추진
○ 국가 제도와 통치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비
○ 고구려 중앙집권 국가의 기반을 완성
○ 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공인하였다.
○ 불교를 국가의 공식 종교로 받아들였다.
○ 왕권 강화와 국가 통합의 기반을 마련하였다.
○ 372년 태학을 설립하여 귀족 자제를 교육하였다.
○ 유교 경전을 중심으로 관리 양성에 힘썼다.
○ 국가 운영에 필요한 인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였다.
○ 중국 남조의 동진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맺음
○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높임
○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류 기반을 확대
○ 373년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법률을 정비하였다.
○ 행정과 형벌의 기준을 마련하여 통치 질서를 확립하였다.
○ 중앙집권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.
○ 384년 동진에서 온 승려 마라난타를 궁중으로 맞음
○ 불교를 국가적으로 받아들이며 백제의 불교 수용을 본격화
○ 이후 백제의 종교·문화 발전에 중요한 기반을 마련
○ 385년 한산에 사찰을 세우고 승려 10명을 출가시킴
○ 불교 교단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
○ 백제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계기
○ 연호 영락 사용, 황제국을 지향하는 자주성을 대외에 선포
○ 강력한 왕권과 국가 위상을 확립
○ 후연과 거란 등을 정벌, 만주 일대를 장악
○ 북방 영토를 크게 확장
○ 고구려 전성기의 시작
○ 396년 백제를 공격, 한성을 함락
○ 아신왕 항복, 조공을 약속
○ 백제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 행사
○ 왜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에 지원을 요청
○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보내 왜군을 격퇴
○ 고구려와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됨
○ 400년 신라의 요청으로 군사를 파견
○ 왜·가야·백제 연합군을 격퇴
○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 행사
○ 고구려의 지원을 받아 왜군을 격퇴
○ 신라의 영토와 왕권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
○ 이후 신라의 성장 기반을 마련
○ 외교적 안정을 바탕으로 왕권을 강화
○ 중앙 통치 체제를 정비하여 국가 운영을 안정.
○ 신라의 성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함
○ 왜에 볼모로 있던 미사흔을 귀환
○ 박제상의 희생으로 왕실의 안정을 되찾음.
○ 왕권 강화와 대외 관계 안정에 기여
○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
○ 남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
○ 한강 유역 진출의 기반을 마련
○ 433년 백제와 나제동맹을 체결
○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공동으로 대응
○ 양국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계기가 됨
○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교 정책을 추진
○ 신라의 자주적인 국가 운영을 강화
○ 독자적인 대외 관계의 기반을 마련
○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국가 기반을 정비하고자 함
○ 왕권 강화와 함께 내부 통치 체제의 안정을 추진
○ 대외적인 위기 속에서 국가의 결속력을 유지하고자 함
○ 475년 백제의 한성 공격, 함락
○ 개로왕 전사, 한강 유역 장악
○ 고구려의 전성기 이어가는 계기
○ 광개토대왕의 정복 사업을 계승 영토 확장
○ 만주와 한반도 북부 대부분 지배
○ 고구려 역사상 최대 영토를 완성
○ 왕족을 중심으로 지배 체제를 재편
○ 왕실 세력을 주요 관직에 배치하여 왕권 강화를 추진
○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 중심의 정치 운영을 강화
○ 왕족을 좌현왕과 우현왕에 임명하여 군사 지휘권을 맡김
○ 왕실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장악하고자 함
○ 고구려의 남진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 체제를 강화
○ 신라가 고구려의 공격을 받자 나제동맹에 따라 구원군을 파견
○ 백제군 1만 명을 보내 신라의 고구려군 격퇴를 지원
○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신라와의 군사 협력을 강화
○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된 뒤 웅진으로 수도를 옮김
○ 고구려의 남진을 피하고 백제의 국가 체제를 재건하고자 함
○ 백제의 웅진시대가 시작되는 계기
○ 한성 함락으로 남하한 백성들을 수습하고 웅진 일대에 정착시킴
○ 고구려의 추가 공격에 대비하여 새로운 수도의 방어 기반을 마련
○ 전쟁으로 혼란해진 백제의 국가 질서를 회복하고자 함
○ 중국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외교 관계를 유지
○ 한성 함락 이후 백제가 건재함을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함
○ 국제적 고립을 방지하고 국가 재건을 위한 외교 기반을 마련
○ 병관좌평 해구가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자 이를 견제하고자 함
○ 왕권을 위협하는 유력 귀족 세력을 통제하려 함
○ 그러나 해구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문주왕은 결국 피살
○ 전국 주요 지역에 우역을 설치
○ 공문서와 물자의 전달 체계를 정비
○ 중앙과 지방의 행정 효율을 높임
○ 까마귀의 도움으로 반란을 미리 알아차렸다는 기록이 전해짐
○ 반란을 진압하여 왕권을 안정
○ 정월대보름 '오기일' 풍습의 유래
○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확장한 영토를 안정적유지
○ 국내 정치와 지방 통치를 정비
○ 국가 통치력 강화
○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
○ 자신의 측근 세력을 주요 관직에 등용
○ 기존 귀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
○ 웅진 천도 이후 불안정했던 정치 체제를 정비
○ 웅진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비 지역에 관심
○ 사비 지역의 개발과 새로운 정치 기반 마련을 추진
○ 이후 성왕 때 이루어진 사비 천도의 기반을 마련
○ 사씨·연씨·백씨 등 새로운 귀족 세력을 적극 등용
○ 기존 유력 귀족의 영향력을 견제하며 지배층을 재편
○ 왕권을 뒷받침할 새로운 정치 세력을 확보
○ 493년 신라에 사신을 보내 혼인을 요청
○ 신라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나제동맹을 강화
○ 고구려의 남진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외교 기반을 마련
○ 494년 부여 완전히 복속
○ 부여 유민 고구려에 편입
○ 북방 지배력 강화
○ 왕실과 귀족 사회의 혼인 제도를 정비
○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을 추진
○ 국가 통치 체계를 더욱 안정
○ 지방의 주요 거점에 담로를 설치하고 왕족을 파견
○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
○ 왕실 중심의 지방 통치 체제를 확립
○ 좌평을 중심으로 중앙 정치 조직을 정비
○ 상좌평을 비롯한 관직 체계를 통해 국정 운영을 강화
○ 웅진 시기 백제의 통치 체제를 안정시키는 데 힘씀
○ 제방을 수리하고 떠돌던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가 정착하게 함
○ 농업 생산 기반을 복구하고 자연재해에 대비
○ 백성의 생활 안정과 국가 재정 기반 강화에 힘씀
○ 국호를 '사로국'에서 '신라'로 공식 확정
○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외적 위상을 높임.
○ 통일 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을 마련
○ 기존의 '마립간' 대신 '왕' 칭호를 사용
○ 중국식 왕호를 도입하여 왕권을 강화
○ 중앙집권 체제를 더욱 확립
○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(울릉도)을 정복
○ 우산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
○ 동해 해상 지배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됨
○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 업무를 전담
○ 군사 조직을 체계적으로 정비
○ 국방력과 왕권을 더욱 강화
○ 520년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법률을 정비
○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통치 질서를 확립.
○ 신라 국가 체제의 기반을 마련
○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약화되었던 국력을 회복
○ 521년 양나라에 백제가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알림
○ 한성 함락 이후 흔들렸던 왕권과 국가의 위상을 회복
○ 532년 금관가야를 신라에 병합
○ 낙동강 유역의 지배력을 확대
○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
○ 538년 수도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김
○ 수도를 중심으로 중앙과 지방의 통치 체제를 재정비
○ 백제의 중흥과 왕권 강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
○ 16관등을 중심으로 관리의 위계질서를 정비
○ 관등에 따라 복색과 지위를 구분하여 관료 조직을 체계화함
○ 중앙집권적인 국가 운영 체제를 강화
○ 중앙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22부를 정비함
○ 왕실 업무와 국가 행정 업무를 분담하여 운영함
○ 백제의 중앙 행정 조직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킴
○ 유교적 정치 이념을 활용하여 국가의 통치 질서를 정비
○ 불교를 장려하여 왕권 강화와 사회 통합을 추진
○ 유교와 불교를 바탕으로 국가의 통치 이념을 발전
○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격파, 한강 유역을 차지
○ 신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
○ 삼국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계기가 됨
○ 영토 확장을 기념하여 북한산비·창녕비 등 순수비를 세움
○ 새롭게 편입된 지역에 왕권을 선포
○ 신라의 영토 확장과 왕권 강화를 대외에 알림
○ 562년 대가야를 정복하여 가야를 완전히 병합
○ 낙동강 유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
○ 삼국 통일의 기반을 더욱 강화
○ 당나라가 한반도 지배를 시도하자 전쟁을 벌임
○ 매소성·기벌포 전투 등에서 당군을 격파.
○ 신라의 자주권을 지켜냄
○ 화랑도를 국가적인 인재 양성 조직으로 정비
○ 청소년 교육과 군사 훈련을 체계화
○ 국가 발전을 이끌 인재를 육성
○ 598년 수나라 문제의 침공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쳐 방어
○ 2차 전쟁 당시 고건무(영류왕), 평양성 전투 대승 500명vs4만명
○ 수나라와의 갈등이 더욱 심화
○ 국경 방어 강화, 장기전에 대비
○ 고구려·수·당·왜 등 주변 국가와 외교 관계를 전개
○ 국제 정세를 활용하여 신라를 견제하고 백제의 입지를 강화
○ 신라와 지속적으로 대립하며 국경 지역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함
○ 백제가 수나라에 고구려 공격을 요청한 사실이 고구려에 알려짐
○ 고구려가 백제의 대수 외교를 견제하면서 양국의 긴장이 심화
○ 삼국과 수나라의 복잡한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
○ 602년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하여 영토 확장을 시도
○ 신라군의 강한 방어와 반격으로 아막성 점령에는 실패
○ 이후에도 신라와 국경 지역을 둘러싼 전쟁을 지속
○ 을지문덕을 총지휘관으로 임명
○ 612년 수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
○ 수나라의 30만 별동대를 살수(청천강)에서 대파
○ 한국사 3대 대첩 살수대첩, 귀주대첩, 한산도대첩
○ 당나라와 사신을 교환, 우호 관계를 유지
○ 전쟁 포로를 송환, 문화 교류를 확대
○ 국경의 안정을 도모, 외교 관계 개선
○ 당나라의 침입에 대비, 요동에서 부여성까지 잇는 천리장성 축조 시작
○ 그러나 강경파(연개소문)와의 대립으로 무산
○ 익산에 대규모 불교 사찰인 미륵사를 창건
○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안정을 도모
○ 미륵사는 백제 후기 불교문화와 건축을 대표하는 사찰
○ 무왕의 뒤를 이어 백제 제31대 왕으로 즉위
○ 즉위 초기 왕권을 안정시키고 정치 체제를 정비
○ 무왕대의 정책을 계승하며 백제의 국력을 유지
○ 당과의 외교 노선을 둘러싸고 정치적 갈등 심화
○ 642년 연개소문의 정변, 영류왕을 시해
○ 이후 연개소문이 정권을 장악, 고구려 정치가 크게 변화
○ 연개소문이 실권을 장악 국정 주도
○ 보장왕은 형식적인 국왕으로 재위
○ 강력한 대당 강경 정책 추진
○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귀족 세력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
○ 왕의 측근과 왕실을 중심으로 정치 권력을 재편
○ 귀족 세력을 억제하고 국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강화
○ 신라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여 미후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함락
○ 642년 대야성을 함락시키며 신라에 큰 타격
○ 백제의 영토를 확대하고 신라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
○ 백제와 고구려의 지속적인 침입에 맞서 국방을 강화
○ 김춘추와 김유신을 중심으로 방어 체계를 정비
○ 삼국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
○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내 군사 동맹을 추진
○ 나당동맹의 기반을 마련하여 외교 관계를 강화
○ 이후 삼국 통일의 중요한 발판이 됨
○ 645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
○ 안시성의 성주가 끝까지 항전하여 당군을 격퇴
○ 당나라의 대규모 침공 방어 성공
○ 당나라와 군사 동맹을 체결
○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
○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
○ 김유신을 중심으로 군사 체제를 강화
○ 귀족 세력을 통합하여 왕권을 안정
○ 통일 전쟁을 이끌 국가 기반을 마련
○ 외교와 군사력을 바탕으로 국가 역량을 강화
○ 삼국 통일을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
○ 신라 중흥의 기틀을 마련
○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를 대규모로 공격
○ 황산벌 전투 이후 사비성이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
○ 의자왕의 항복으로 백제는 678년의 역사를 끝내고 멸망
○ 660년 김유신과 당나라 군이 백제를 공격
○ 황산벌 전투와 사비성 함락으로 백제가 멸망.
○ 삼국 통일 전쟁의 전환점을 마련
○ 660년 백제가 멸망하면서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.
○ 연개소문 사후 후계자 간 권력 다툼과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국력 크게 약화
○ 668년 평양성이 함락, 고구려가 멸망
○ 668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
○ 삼국 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
○ 한반도 통일의 기반을 완성
○ 676년 당나라 세력을 축출하여 삼국을 통일
○ 한반도 대부분을 신라의 영토로 통합
○ 통일신라 시대를 염